낭중지추
―주머니 속의 송 곳 같은
인재를 찾아야하는데,
사람 찾기가 쉽지 않으니
옥석을 가리는 지혜가
더 더욱 필요합니다―
옛 글에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글자를 풀면 주머니 ‘낭’자에 송곳 ‘추’자로 되어있으니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입니다.
주머니에 송곳을 넣으면 당연히 뾰족한 끝이 천 밖으로 삐져나옵니다. 겉으로는 끝의 작은 부분만 보이지만 실제 주머니 속에는 긴 자루가 들어있습니다. 이 글의 깊은 뜻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은 감추려 해도 숨겨지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에둘러 비유한 것입니다. 또한 사람의 진정한 능력을 바로 알아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하고 숨은 인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진가가 발휘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출전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평원군열전’입니다. 2000여 년 전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하기 전인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왕족으로 공자(公子)였던 평원군(平原君)은 어진 성품으로 재상(宰相)의 자리에 까지 오르면서 수하(手下)에 수천 명의 식객(食客)을 거느리던 실력자였습니다.
당시 서쪽의 강한 진나라가 동쪽의 여러 나라들을 침략해 오고 있던 차에 수도 한단(邯鄲)까지 포위를 당하게 되자 조나라는 남쪽의 초(楚)나라와 합종책(合從策)으로 동맹을 맺기 위해 초나라로 사신을 보내게 되었는데, 바로 평원군이 그 협상의 주역입니다.
평원군은 함께 떠날 문무(文武)를 겸비한 용기 있는 인물 20명을 선발합니다. 그런데 식객들 가운데 19명을 뽑고 한 명이 모자랐는데, 그 때 모수(毛遂)라는 자가 앞에 나서면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자천(自薦)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평원군은 모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어진 선비의 처세란 낭중지추와 같아서 그 끝이 보이기 마련인데, 그대는 나의 문하(門下)에 기거한지가 3년이나 지났는데도 내가 아직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 무슨 능력이 있는가?”
모수는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소인은 오늘에서야 비로소 낭중지추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만약 일찍 주머니 속에 넣어 주셨다면 비단 송곳 끝만 보이겠습니까? 송곳 자루까지 모두 내보여드렸을 것입니다.”
평원군은 호언장담하는 모수의 말을 믿고 그를 일행에 가담시켜 초나라로 데리고 갑니다. 아닌 게 아니라 모수는 뛰어난 달변으로 초왕을 설득하여 협상을 담판 짓고 닭과 개와 말의 피를 함께 마시는 혈맹의 의식을 치름으로써 성공을 거둡니다. 평원군은 의외의 성과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내가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소. 그대가 가진 무기는 단지 세치의 혀였지만 그 힘은 능히 백만의 군사보다도 더 강한 것이 되었소.”
그리고는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높이 대우하였습니다. 평원군이 전국시대 사군자(四君子)의 한사람으로 역사에 남을 명성을 얻은 것은 늦으나마 좋은 인물을 알아보고 발탁해 쓴 지혜로운 용인술(用人術)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한(漢)나라의 후예라는 것 외에 별 볼일 없던 유비(劉備)가 수경(水鏡)선생 사마휘(司馬徽)의 천거를 듣고 먼 길 샹양(襄陽)으로 찾아가 제갈량을 모셔온 이야기는 삼국지의 백미(白眉)로 꼽힙니다. 제갈량은 수경선생 밑에서 공부는 했지만 시골에서 농사짓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두 번씩이나 허탕을 치는 치욕을 감수하면서 세 번째 겨우 찾아가 엎드려 크게 절하고 “천하를 위해 도와 달라”고 간청을 함으로써 ‘삼국지’가 중국 역사의 꽃이 되게 합니다. 그 때 유비의 나이 47세, 제갈량은 27세였습니다. 유비는 자식 같은 애송이 제갈량에게 예를 다 바쳐 세상에 나오게 함으로써 ‘오두막집으로 세 번을 찾는다’라는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불후(不朽)의 용인술을 보여주었습니다.
2020년 4월 15일의 21대 총선거를 5개월 여 남겨놓고 정치권이 선거채비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이미 총선기획단을 출범시키고 외부인재 영입을 서두르면서 선거전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백년하청(百年河淸)의 이전투구(泥田鬪狗)를 일삼는 정치권이지만 4년 임기는 어김없이 흘러 다시 새로운 인물들을 선출해야 될 때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내년 총선거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집권당인 민주당으로서는 점점 이반(離反)돼 가는 민심을 수습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어야만 그 여세로 202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고 한국당 역시 총선에서 이겨야만 그 기세로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입니다. ‘만사가 인사’라고 하였듯 능력 있고 참신한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재빨리 영입인사 1호로 박찬주 전 육군대장을 회심의 카드로 공개했으나 ‘갑질 전력’으로 당 안팎의 거센 비판에 부딪혀 모양새를 구겼고 그 외 인물들 역시 신선한 느낌이 없으니 일반의 반응이 그리 호의적이지는 아닌 듯싶습니다.
그가 누구이던 사람은 그 가 걸어 온 길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학벌이 좋다? 경력이 화려하다? 말을 잘한다? 인물이 좋다? 여러 가지가 고려 대상이 되겠지만 우선 평판이 나빠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깨끗해야 합니다. 더 더욱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입니다. 굳이 평원군이나 유비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옥석(玉石)을 구분하는 분별력은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 잘 못 써서 망신당한 대통령을 수 없이 봐 왔습니다. 그것이 재앙인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9일 임기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나라다운 나라’ ‘공정과 정의’ ‘평화의 한반도’를 국정기조로 삼아 내 달려온 2년 반이었습니다. 문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취임사로 국민들이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팀을 참가시키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판문점 정상회담을 성공시키는 등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해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가라앉은 경제를 되살릴 수는 없었고 잦은 인사 실패, 적폐 청산의 피로감,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계기로 두 편으로 갈라진 민심 등으로 여론이 악화된 것도 사실입니다. 임기 절반을 평가하는 언론의 흐름을 보면 긍정적인 기사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후반기 임기가 남아있으니 공과를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2년 반 뒤 웃으며 떠나는 문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8일 입동(立冬)을 지나 22일이 소설(小雪)이니 절기상으로는 이미 겨울에 들어섰습니다. 낙엽이 떨어지고 기온이 내려가니 곧 눈이 올 것입니다. 제발 나라가 안정돼 국민들의 삶이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